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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스승과 제자, 한국 바둑의 황금시대를 열다: 조훈현과 이창호

by 월선네 2025. 5. 11.
스승과 제자, 한국 바둑의 황금시대를 열다: 조훈현과 이창호 스토리

스승과 제자, 한국 바둑의 황금시대를 열다

조훈현과 이창호, 바둑판 위에서 펼쳐진 감동의 드라마

[조훈현과 이창호 상징 이미지]

바둑판 위의 64칸. 때로는 끝없는 우주보다 넓고, 때로는 인간의 마음보다 깊은 심연을 담고 있습니다. 이 작은 사각의 우주에서 한국 바둑, 나아가 세계 바둑의 역사를 새로 쓴 두 거장이 있습니다. 바로 스승 조훈현 9단과 제자 이창호 9단입니다. 그들의 이야기는 단순한 승패를 넘어선, 치열한 경쟁과 뜨거운 사제애가 공존했던 한 시대의 대서사시입니다.

신동의 탄생: 9세에 프로가 된 소년, 조훈현

1953년 전남 목포에서 태어난 조훈현은 어린 시절부터 바둑에 비범한 재능을 보였습니다. 그의 천재성은 국경을 넘어 일본 바둑계에까지 알려졌고, 1962년, 그의 나이 고작 9세에 일본기원의 프로 입단 관문을 통과합니다. 이는 일본기원 역사상 최연소 프로기사 탄생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이었습니다. 작은 소년의 눈망울에는 이미 바둑 세계를 평정할 천재의 빛이 번뜩이고 있었습니다.

[바둑계 속보] "한국 소년, 일본 바둑계 뒤흔들다!"

어제 일본기원에서 열린 프로 입단 최종국에서 한국에서 온 9세 소년 조훈현 군이 승리하며 프로 입단을 확정지었습니다. 일본기원 관계자는 "이런 재능은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천재"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조 군의 등장은 일본 바둑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 조훈현 9단 이미지]

10년간의 일본 유학 생활을 마치고 1972년 고국으로 돌아온 조훈현은 한국 바둑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기 시작했습니다. 1974년 최고위전에서 첫 타이틀을 획득한 것을 시작으로, 그의 거침없는 행보는 계속되었습니다. 특히 1980년대는 그야말로 '조훈현 시대'였습니다. 그는 국내 기전들을 차례로 석권하며 '조신(趙神)', '전신(戰神)'이라 불렸고, 그의 앞을 막을 자는 없어 보였습니다. 1989년에는 세계 바둑대회인 응씨배에서 우승하며 한국 바둑의 위상을 세계에 떨치기도 했습니다. 이는 한국 바둑 역사상 최초의 메이저 세계대회 우승이었습니다.

조훈현 9단의 주요 대국 및 업적

  • 1980년, 1982년 전관왕 달성 (9관왕)
  • 1986년 전관왕 달성 (10관왕)
  • 1989년 제1회 응씨배 우승 (대 녜웨이핑 9단 3:2 승) - 한국 최초 세계대회 우승
  • 1994년 제5회 동양증권배 우승 (대 요다 노리모토 9단 3:1 승)
  • 1994년 제7회 후지쯔배 우승 (대 고바야시 사토루 9단 1:0 승)
  • 2000년 제5회 LG배 세계기왕전 우승 (대 이창호 9단 3:1 승)
  • 2001년 제14회 후지쯔배 우승 (대 유창혁 9단 1:0 승)
  • 2002년 제3회 농심신라면배 한중단체전 4연승 (한국 우승 견인)
  • 통산 160회 우승 (역대 최다)

또 다른 신동의 등장: 이창호, 조용한 혁명가

1975년 전북 전주, 조훈현이 한국 바둑계를 호령하던 바로 그 시기에 또 한 명의 바둑 천재가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바로 이창호입니다. 그의 등장은 마치 잘 짜인 운명의 각본과도 같았습니다. 1986년, 11살의 어린 나이로 프로에 입단한 이창호를 발굴하고 자신의 내제자(內弟子)로 받아들인 이가 바로 조훈현 9단이었기 때문입니다.

[소년 시절 이창호 9단 이미지]

스승 조훈현은 제자 이창호의 잠재력을 단번에 간파했습니다. 그는 이창호를 자신의 집에 머물게 하며 숙식을 함께하고, 바둑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전수했습니다. 조훈현의 날카롭고 공격적인 기풍과는 달리, 이창호는 차분하고 정교한 계산력을 바탕으로 한 '형세판단'과 '끝내기'에 독보적인 강점을 보였습니다.

[바둑계 핫이슈] "조훈현, '바둑 신동' 이창호 발굴... '나보다 더 대단해질 것'"

"이 아이는 내가 본 그 어떤 아이보다 특별하다. 머지않아 나를 뛰어넘을 존재가 될 것이다." 조훈현 9단이 11살 소년 이창호를 두고 한 이 말은 당시 바둑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일각에서는 "조훈현이 자신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를 제 손으로 키우는 셈"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였습니다.

🔥 세기의 대결: 스승 VS 제자, 피할 수 없는 운명

시간이 흘러 제자는 스승의 그림자를 밟으며 성장했습니다. 1988년, 14살의 이창호는 바둑왕전에서 생애 첫 타이틀을 획득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같은 해, 최고위전 결승에서 드디어 스승 조훈현과 운명적인 첫 타이틀 매치를 벌였지만, 경험과 관록에서 앞선 스승에게 1승 3패로 패하며 아쉬움을 삼켜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 패배는 더 큰 성장을 위한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2년 후인 1990년, 바둑 팬들이 숨죽여 기다리던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제34기 최고위전 결승. 다시 만난 스승과 제자.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속보] "15살 소년, 바둑의 신을 꺾다!" - 한국 바둑계 지각변동

어제 열린 제34기 최고위전 결승 5번기 최종국에서, 도전자 이창호 3단(당시 15세)이 스승인 조훈현 9단을 상대로 풀세트 접전 끝에 3승 2패로 극적인 역전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경기장은 한동안 침묵에 휩싸였다가 이내 우레와 같은 기립박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조훈현 9단은 "내가 언젠가는 올 것이라고 예견했던 일이 일어났을 뿐"이라며 담담히 제자의 승리를 축하했습니다.

이 승리는 단순한 하나의 우승 이상의 의미를 지녔습니다. 그것은 한국 바둑계의 패권이 스승에서 제자에게로 넘어가는, 이른바 '세대교체'를 알리는 장엄한 신호탄이었습니다. 같은 해 국수전에서도 이창호는 조훈현을 3-0으로 완파하며 최연소 국수(15세 6개월)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바야흐로 '이창호 시대'의 서막이 열린 것입니다.

[조훈현 대 이창호 대국 장면]

🌏 세계를 평정한 '돌부처' 이창호

국내 무대를 평정한 이창호의 시선은 세계로 향했습니다. 1992년, 제3회 동양증권배 세계바둑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만 16세 6개월의 나이로 세계 최연소 챔피언이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웁니다. 그의 별명은 '돌부처'. 대국 중 어떤 상황에서도 좀처럼 표정 변화를 보이지 않고, 냉철한 이성으로 최선의 수를 찾아내는 그의 모습에서 비롯된 별명이었습니다. 또한, 신기에 가까운 그의 끝내기 능력은 '신산(神算)'이라는 찬사를 받았습니다.

"이창호의 바둑은 마치 정교하게 프로그래밍된 컴퓨터와 같다. 완벽한 수읽기와 계산, 티끌만큼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플레이. 그가 바둑판 앞에 앉으면 상대는 이미 절반은 지고 들어가는 것이나 다름없다."

- 익명의 일본 바둑 해설가 -

이창호의 독주는 계속되었습니다. 1994년에는 국내 16개 기전 중 무려 13개 기전에서 우승하며 전무후무한 '싸이클링 히트'(한 해 전관왕에 가까운 성적)를 달성했습니다. 당시 그의 나이는 불과 19세. MZ세대의 언어로 표현하자면, 그야말로 '바둑계 올킬'의 신화였습니다. 이후로도 수많은 세계대회를 제패하며 2000년대 중반까지 세계 바둑 최강자로 군림했습니다.

주요 세계대회 우승 연혁 (이창호)

  • 동양증권배 (1992, 1993, 1996, 1998)
  • 후지쯔배 (1996, 1998, 2007)
  • LG배 (1997, 1999, 2001, 2004)
  • 삼성화재배 (1997, 1998, 1999, 2003)
  • 도요타덴소배 (2002)
  • 춘란배 (2003, 2005)
  • 응씨배 (2009)
  • TV아시아선수권 (1995, 1996, 2002)
  • 진로배 SBS 세계바둑최강전 (한국팀 3연패 주역, 9연승 등)
  •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최강전 (한국팀 6연패 주역, '상하이 대첩' 5연승 등)

🏆 숫자로 보는 두 전설의 기록

조훈현과 이창호, 두 전설이 한국 바둑계에 남긴 족적은 실로 엄청납니다. 그들의 기록은 단순한 숫자를 넘어 한국 바둑의 황금기를 상징하는 지표입니다.

조훈현 9단

[조훈현 9단 사진]

별명: 조신(趙神), 전신(戰神), 황제

통산 우승: 160회

세계대회 우승: 9회 (응씨배 최초 우승 등)

최연소 프로 입단 (만 9세 7개월 - 일본기원)

국내 공식대국 19연승, 16연승 등 다수

왕위전 16연패 (1976~1979, 1981~1992)

이창호 9단

[이창호 9단 사진]

별명: 돌부처, 신산(神算), 상금왕

통산 우승: 140회

세계대회 우승: 21회 (역대 최다)

최연소 세계챔피언 (만 16세 6개월 - 동양증권배)

국내 공식대국 41연승, 35연승 등

국내 기전 그랜드슬램 (1994년 13관왕)

🔄 세대교체, 그리고 아름다운 공존

1990년대 초반, 스승과 제자 사이의 치열했던 타이틀 경쟁은 한국 바둑계 최고의 흥행 카드였습니다. 세대교체가 이루어진 이후에도 두 사람의 관계는 변함없이 돈독했습니다. 이창호는 공식 석상에서 항상 스승 조훈현에 대한 존경심을 표했으며, 조훈현 역시 제자 이창호의 성장을 자랑스러워했습니다.

[바둑계 인사이드] "스승과 제자, 경쟁자에서 영원한 동반자로"

"바둑판 위에서는 치열하게 다투는 적이지만, 바둑판을 벗어나면 그는 나의 영원한 스승님이십니다." 이창호 9단은 한 인터뷰에서 스승 조훈현 9단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조훈현 9단 역시 "이창호는 나의 가장 자랑스러운 제자이자, 한국 바둑의 자존심이다. 그가 있어 한국 바둑이 세계 최강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고 화답하며 훈훈한 사제의 정을 과시했습니다.

조훈현이 닦아놓은 길 위에서 이창호는 한국 바둑을 세계 정상으로 이끌었고, 두 사람의 존재 자체가 한국 바둑의 황금기를 상징했습니다.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세계 바둑계는 그야말로 '코리아 쇼크'에 휩싸였습니다. 수많은 국제대회 결승전이 한국 기사들 간의 집안싸움으로 치러졌고, 그 중심에는 항상 조훈현과 이창호, 그리고 그들의 영향을 받은 후배 기사들이 있었습니다.

🕰️ 주요 연혁 타임라인

1962년: 조훈현, 만 9세의 나이로 일본기원 프로 입단 (최연소 기록)

1972년: 조훈현, 한국 귀국

1974년: 조훈현, 최고위전 우승 (첫 타이틀)

1980년대: 조훈현, 국내 바둑계 평정. '조신' 시대. 수차례 전관왕 달성

1984년: 조훈현, 제1회 한중 슈퍼대항전에서 녜웨이핑에게 패배

1986년: 이창호, 만 11세의 나이로 프로 입단. 조훈현의 내제자가 됨.

1988년: 이창호, 바둑왕전 우승 (첫 타이틀)

1989년: 조훈현, 제1회 응씨배 우승 (한국 최초 메이저 세계대회 제패)

1990년: 이창호, 최고위전 결승에서 스승 조훈현 꺾고 우승 (만 15세). 국수전 우승 (최연소 국수).

1992년: 이창호, 제3회 동양증권배 우승 (만 16세 6개월, 세계 최연소 챔피언)

1994년: 이창호, 국내 13관왕 달성 (싸이클링 히트)

1990년대 중반 ~ 2000년대 초반: 이창호, 세계 바둑계 평정. '돌부처' 시대. 세계대회 최다 우승 기록 행진.

1997년: 이창호, 제1회 LG배, 제2회 삼성화재배 동시 우승 (세계대회 2관왕)

2003년: 조훈현-이창호 사제, 제8회 삼성화재배 결승에서 맞대결 (이창호 우승)

2005년: 이창호, 제5회 춘란배 우승

2009년: 이창호, 제6회 응씨배 우승

🌅 전설들의 현재, 그리고 미래

세월이 흘러 두 전설도 바둑판 위에서의 치열함보다는 관조와 여유를 찾아가고 있습니다. 조훈현 9단은 2016년부터 2020년까지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며 정치인으로 변신하기도 했으며, 현재는 한국기원 이사, 바둑 해설가 및 원로로서 한국 바둑의 발전과 후진 양성에 힘쓰고 있습니다. 그의 경험과 지혜는 여전히 한국 바둑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이창호 9단 역시 불혹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여전히 현역 프로기사로서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2023년에는 울산시장배 프로시니어 최강전에서 우승하며 13년 만에 공식 타이틀을 획득하는 저력을 보여주었고, 2025년 초에는 시니어 세계바둑 오픈에서도 우승컵을 들어 올리며 '영원한 챔피언'임을 다시 한번 증명했습니다. 그의 바둑은 여전히 깊고 견고하며, 많은 후배 기사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현재의 조훈현과 이창호]

💭 바둑, 그 이상의 의미: 끝나지 않은 이야기

조훈현과 이창호. 두 사람의 관계는 단순한 스승과 제자를 넘어,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자 함께 성장하는 동반자였습니다. 그들은 서로의 존재를 통해 스스로를 단련했고, 한국 바둑이라는 거대한 나무를 함께 키워냈습니다. 조훈현이 뿌리를 내리고 기둥을 세웠다면, 이창호는 그 나무를 무성한 가지와 잎으로 채워 세계라는 하늘로 뻗어 나가게 했습니다.

"진정한 승부는 상대방과의 대결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다. 바둑판 위에서 내가 이길 수 있는 유일한 적은 어제의 나 자신뿐이다."

- 이창호 9단 어록 중 -

그들이 바둑판 위에 그려낸 우주는 여전히 확장 중이며, 그들이 남긴 수많은 명국과 이야기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회자될 것입니다. 한국 바둑의 두 별, 조훈현과 이창호는 오늘도 우리 곁에서 가장 밝게 빛나고 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는 단순한 바둑사를 넘어, 꿈을 향한 열정과 노력, 그리고 인간적인 성숙이 얼마나 위대한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감동적인 증거입니다.

에디터의 한마디:

최근 넷플릭스 등에서 화제가 된 영화 '승부'는 바로 이 두 전설, 조훈현 9단과 이창호 9단의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제작되었습니다. 배우 이병헌과 유아인의 불꽃 튀는 연기도 훌륭하지만, 실제 두 사람의 이야기는 영화보다 더욱 드라마틱하고 감동적입니다. 바둑을 잘 모르는 분들이라도 이들의 삶과 열정, 그리고 치열했던 승부의 세계를 한번쯤 접해보시길 강력히 추천합니다. 혹시 알고 계셨나요? 대한민국이 스포츠나 문화 콘텐츠가 아닌, '두뇌 스포츠'인 바둑으로 세계 정상에 처음으로 우뚝 섰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이들의 이야기는 한국인의 자긍심 그 자체입니다.

자료 참고: 중앙일보, 매일경제, 한국기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