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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건국전쟁]잊혀진 역사의 재발견: 다큐 영화가 들려주는 70년의 비밀

by 월선네 2025. 5. 11.
잊혀진 역사의 재발견: 다큐 영화 '건국전쟁'이 들려주는 70년의 비밀

잊혀진 역사의 재발견: 다큐 영화 '건국전쟁'이 들려주는 70년의 비밀

대한민국 건국의 아픔과 영광, 그리고 이승만 대통령의 재조명

영화 '건국전쟁' 포스터 또는 주요 장면 이미지

이승만, 그가 남긴 대한민국이라는 유산

영화 '건국전쟁'은 이승만 대통령이 대한민국에 남긴 유산이 무엇인지 심도 있게 탐구합니다. 영화는 그를 단순한 정치 지도자를 넘어, 격랑의 국제 정세 속에서 신생 독립국의 미래를 설계한 선각자로 평가합니다.

"대한민국은 거대한 공산주의 세력의 귀퉁이에 있는 나라입니다. 그런데도 국가가 이토록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문화 강국이 되고, 국민 개개인이 번영과 행복을 누리고 사는 건 이승만 덕분입니다."

1875년에 태어나 1965년에 생을 마감한 이승만 대통령의 일생은 구한말의 혼란기부터 일제강점기의 암흑기, 그리고 해방 이후 건국과 6.25 전쟁이라는 파란만장한 한국 근현대사를 관통합니다. 독립운동가로서 국제사회에 한국의 독립을 호소했으며, 초대 대통령으로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초석을 다진 그의 행보는 오늘날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번영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음을 영화는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 주요 연보

1875년 3월 26일

황해도 평산군 마산면 능안골에서 출생

1895년

배재학당 입학, 서구 학문과 사상 접함

1897년 ~ 1898년

협성회보 주필, 독립협회 및 만민공동회 참여, 개혁 운동 전개

1899년 ~ 1904년

고종황제 폐위 음모 사건 연루 혐의로 한성감옥 투옥. 옥중에서 '독립정신' 저술

1904년 11월

특별사면 후 미국 유학길. 밀사 임무 수행

1907년

조지 워싱턴 대학교 졸업 (학사)

1908년

하버드 대학교 졸업 (석사)

1910년

프린스턴 대학교 철학박사 학위 취득 (논문: '미국의 영향을 받은 영세중립론')

1913년 ~ 1945년

하와이, 미국 등지에서 교육, 언론, 외교 활동을 통해 독립운동 전개

1919년 4월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총리, 이후 통합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으로 추대

1945년 10월

광복 후 귀국. 독립촉성중앙협의회 총재로 활동

1948년 5월 31일

대한민국 제헌국회 의장으로 선출

1948년 7월 24일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취임 (제1~3대 대통령 역임)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남침으로 6.25 전쟁 발발 (~1953년 7월 27일 휴전 협정)

1953년 10월 1일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1960년 3월 15일

3.15 부정선거로 인한 국민적 저항 직면

1960년 4월 26일

4.19 혁명으로 대통령직 하야 성명 발표

1960년 5월 29일

하와이로 망명

1965년 7월 19일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서거 (향년 90세)

이승만 대통령의 역사적 활동 관련 이미지 (예: 독립운동 시절, 대통령 취임식 등)

[역사의 현장] 1954년, 뉴욕 '영웅의 거리'를 행진하다

영화는 이승만 대통령의 국제적 위상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으로 1954년 뉴욕 맨해튼 '영웅의 거리(Canyon of Heroes)' 카퍼레이드를 비중 있게 다룹니다. 6.25 전쟁 정전협정 체결 이듬해에 이루어진 이 행사는, 당시 미국 사회가 이승만 대통령과 대한민국에 보낸 존경과 지지의 표현이었습니다.

뉴욕 '영웅의 거리' 카퍼레이드

이 '영웅 행진'은 미국의 전쟁 영웅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을 비롯하여 세계사에 큰 족적을 남긴 인물들에게만 뉴욕시가 공식적으로 허용하는 영예로운 행사였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이 이 행렬의 주인공이 되었다는 사실은, 냉전의 최전선에서 공산주의의 확장을 막아낸 대한민국의 역할과 그 지도자에 대한 국제사회의 높은 평가를 반영하는 것이었습니다.

🌱 번영의 씨앗: 토지개혁과 교육혁명

영화 '건국전쟁'은 이승만 정부 시절 단행된 두 가지 핵심 정책, 즉 토지개혁과 교육혁명이 대한민국 발전의 결정적인 밑거름이 되었다고 역설합니다. 이는 당시의 시대적 한계와 열악한 재정 상황을 고려할 때 거의 기적에 가까운 성과였다고 평가됩니다.

첫째, 농지개혁: 경제 성장의 기반 마련

토지개혁 또는 교육혁명 관련 상징적 이미지 (예: 당시 농촌 풍경, 학교 수업 모습 등)

1949년부터 본격적으로 추진된 농지개혁은 '유상매입 유상분배' 원칙에 따라 이루어졌습니다. 이 개혁은 소작농에게 토지를 분배함으로써 자작농을 대거 창출했고, 이는 농촌 사회의 안정과 생산성 향상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또한, 지주 계층이 산업자본가로 전환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여 장기적으로 대한민국 경제 성장의 중요한 토대가 되었습니다.

"대한민국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가장 결정적인 순간은 1949년 이승만의 토지개혁이었다."

토지개혁은 단순히 경제적 의미를 넘어, 국민들의 삶을 안정시키고 자녀 교육에 대한 투자를 늘릴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을 조성하는 데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둘째, 교육 혁명: 백년지대계를 세우다

토지개혁 또는 교육혁명 관련 상징적 이미지 (예: 당시 농촌 풍경, 학교 수업 모습 등)

영화는 이승만 정부가 교육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음을 강조합니다. 건국 초기, 극심한 가난 속에서도 국가 전체 예산의 상당 부분을 교육에 투자한 것은 미래를 내다본 혜안이었습니다. 그 결과, 해방 직후 80~90%에 달했던 문맹률이 현저히 낮아졌고, 이는 대한민국이 인적 자원을 바탕으로 빠르게 성장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이승만 정권은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가난한 정권이었다. 그런데 그 가난한 정권이 교육 부문에 전체 예산의 20%를 투자할 만큼 교육 사업에 역점을 뒀고 그 덕분에 80~90%였던 문맹률이 20%로 떨어지고 대한민국 교육 혁명의 토대가 만들어졌다."

- 영화 '건국전쟁' 에필로그 중 -

💫 시대를 앞서간 선구자적 면모

영화는 이승만 대통령이 여러 측면에서 시대를 앞서간 선구자였음을 조명합니다. 그의 정책과 비전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이거나 이해받기 어려웠을지 모르나, 장기적으로 대한민국의 발전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1948년 정부 수립과 함께 여성에게 남성과 동등한 투표권을 부여한 조치를 들 수 있습니다. 이는 서구 선진국들조차 오랜 투쟁을 통해 여성 참정권을 쟁취했던 역사를 고려할 때 매우 진보적인 결정이었습니다.

"서구 여성들도 투표권을 획득하기 위해 거리로 나가 긴 시간을 투쟁하는 지난한 과정을 겪었어요. 선진국 스위스도 1972년에서야 여성에게 투표권을 줬고요. 하지만 한반도에서 여성의 투표권은 마치 선물처럼 부여된 거죠."

또한,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은 이승만 대통령의 외교적 성과 중 가장 중요한 업적으로 평가받습니다. 이 조약은 6.25 전쟁 이후 대한민국의 안보를 굳건히 지키는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해왔으며, 지난 70여 년간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그리고 경제 발전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습니다.

"이승만은 미국과 대한민국이 긴밀한 관계를 유지할 것이라는 비전을 갖고 있었다... 아무도 그 당시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던 사람은 없었다. 오직 이승만이 그런 생각을 품고 있었다."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또는 여성 투표권 관련 역사적 사진

🔍 재평가되는 역사: '독재자'라는 오명을 넘어서

'건국전쟁'은 이승만 대통령에게 덧씌워진 '독재자'라는 프레임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제시하며, 그의 공과를 균형 있게 평가하려는 시도를 보여줍니다. 영화는 그가 장기집권을 했고 정치적 과오가 있었음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그를 단순한 독재자로 규정하는 것은 역사적 맥락을 무시한 평가일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이승만이 4·19로 결국 7일 만에 하야했습니다. 정권을 7일 만에 내려놓는 독재자가 어딨어요. 세상에 그런 독재자는 없습니다."

마이클 브린 전 주한외신기자클럽 회장은 영화에서 "한반도의 분단은 역설적으로 대한민국이 오늘날처럼 발전하는 중요한 요인이 됐다"고 평가하며, "만약 한반도가 분단되지 않았다면, 대한민국은 아마 미얀마 같은 나라, 혹은 공산주의 국가가 되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이승만 대통령이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호하려 했던 노력이 결과적으로 대한민국의 성공적인 발전에 기여했다는 시각을 뒷받침합니다.

💭 영화 제작자의 고백: "70년 동안 몰랐던 이야기"

영화를 연출한 김덕영 감독은 자신 역시 과거에는 이승만 대통령에 대해 편향된 시각을 가지고 있었음을 솔직하게 고백합니다. 그는 "나도 84학번으로, 전형적인 586세대"라며 "나 역시 대학을 나오고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면서도 그렇게 오랫동안 이승만이 누군지 몰랐던 데 대한 철저한 자기반성이 영화에 담겨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자기고백은 영화가 특정 이념을 강요하기보다는, 역사적 진실에 대한 탐구와 자기 성찰의 과정을 담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김 감독은 또한 "촬영 내내 건국세대에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영화를 제작하면서 느꼈던 감정의 일단을 보여주는 동시에, 많은 관객이 영화를 관람하며 공감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잊히거나 왜곡된 역사 속 인물들에 대한 미안함과 존경심이 영화 전반에 흐르고 있습니다.

[관객 후기]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감동의 영화"

뜨거운 관객 반응

용산, 춘천, 부산, 광주 등 전국 15곳에서 열린 영화 시사회에서는 관객들의 뜨거운 반응이 이어졌습니다. 많은 이들이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감동의 영화", "우리나라의 건국 역사를 제대로 알게 되었다", "이승만 대통령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등의 소감을 남기며 영화에 대한 높은 만족감을 표현했습니다. 특히 젊은 세대 관객들에게는 대한민국 현대사에 대한 새로운 관심과 이해를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습니다.

영화 '건국전쟁' 관련 관객 반응 또는 시사회 현장 이미지

🌟 역사의 재발견, 그리고 미래를 향한 성찰

'건국전쟁'은 단순한 역사 다큐멘터리를 넘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미래에 대한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영화는 과거를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이 현재를 정확히 진단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데 있어 얼마나 중요한지를 역설합니다.

"중국, 소련, 북한이라는 거대한 공산주의 세력이 힘을 합쳐 언제라도 공산화시킬 수 있는 동북아시아의 작은 땅에 불과했다. 그걸 이승만이라는 한 의인이 위기에서 구해낸 것이라고 해도 지나친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이 영화를 통해 관객들은 대한민국의 건국 과정에 얽힌 복잡다단한 이야기들을 접하며,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번영이 결코 쉽게 얻어진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또한, 역사적 인물에 대한 평가는 시대적 상황과 다양한 관점을 고려하여 이루어져야 함을 시사합니다.

에디터의 한마디:

2025년 5월 현재, 영화 '건국전쟁'은 개봉 이후 꾸준히 사회적 담론의 중심에 서 있습니다. 역사는 고정불변의 박제된 과거가 아니라, 현재의 시각과 새로운 자료의 발굴을 통해 끊임없이 재해석되고 재평가되는 살아있는 이야기입니다. 이 영화가 던지는 가장 중요한 질문은 단순히 "이승만은 어떤 인물이었는가?"를 넘어, "우리는 대한민국의 역사를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있으며, 그로부터 무엇을 배우고 있는가?"일 것입니다.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이 땅의 뿌리를 되짚어보는 것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자 권리일 것입니다. 이번 기회에 가족, 친구들과 함께 '건국전쟁'을 관람하고, 대한민국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해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어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요?

자료 참고: 조선일보 등